봄101.  본심을  찾은  사람은  인과를  초월한다. 몸을  자기로  여기고 물질을  자기라고  여기면 몸이  아프면 아픔을  감각하는  것으로  치유하지  못하고 왜  몸이  아팠는지를  생각으로  따져 답을  내고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럴듯한  답을  끼워   맞추어 스스로  긍정하여야  넘어갑니다. 알아내지  못하고  모르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여깁니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아보았자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어리석은  짓입니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아내려는  것은 물질현상에  통용되는  인과의  법칙입니다. 몸을  자기라고  여기고 몸에서  나오는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는  차원에서 늘상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감각이  생각을  이겨 안과  밖이  없는 하나의  텅빈  공간을  감지하는  차원에서는 지금  여기를  살기가  바쁘므로 지나가버린  과거사를  떠올려 원인을  분석하려는  생각  따위를  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프면  아이구  아이구  하다가 안  아프면  뚝  그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차원에서는  인과를  따지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감각을  위주로  사는  차원에서는  인과가  없습니다. 찰나  찰나  변하는  모습을  감각하므로 특정의  현상에  대하여  집착을  할  여가가  없습니다. 그런  걸  따지다가는 지금  여기  벌어지는  현상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몸이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합니다. 바람이  불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안아프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고  밝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은  텅비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텅비어  있기에  변화무쌍합니다. 일일이 그런  결과에  대한  원인을  밝힐  여가가  없습니다. 아프면  아픔을  싫어하지  않고  아파볼  뿐입니다. 아픔도  잠시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갑니다. 아픔이  있어서  아프지  않음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인과를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하나의  현상만 구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갑니다. 아픔도  텅비어있고  아프지  않음도  텅비어있습니다. 인과를  따져서  무엇하겠습니까? 감각이  생각을  이긴  분상에서는 왜라고  하는  생각이 발하는 의문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200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