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14.  목요감각계발  과정에서 (2009년 11월 26일) 원풍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맏딸을  키울  때는 자기가  너무  간섭하고  강요하였기에 성장하고  나서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었고 둘째  아들은 비교적  간섭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았으므로 성장하고  나서  편안하게  사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러한  말은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소리로서 신문  잡지나  텔레비전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럴듯한  소리다. 이  말은 좌뇌본위,  생각위주,   물질의  차원에서  통용되는  소리다. 우뇌본위  감각위주의  영적인  차원에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다. 그러한  결론은  현재가  과거를  심판하는  소리로서  선악과를  따먹고  나오는  소리다. 텅빔을  깨달아  영적인  사람이  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진다. 과거가  없으므로 과거에  대한  판단  평가  심판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과거에  대한  심판이  나오는  것은 텅빔  자체가  되지  못하고 텅빔을  보고  아는  자의  소행이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텅빔  자체가  되면 과거에  대한  자랑도  과거에  대한  비판도  사라진다. 텅빔을  깨달아  본심을  회복한  사람은  인과(因果)를  초월한다. 자기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자기의  문제에  불과하다. 자기의  문제는  자기가  해결하여야  한다. 원소님이 자기의  7세난  아들이 자기의   5세난  딸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자주  건드려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남을  볼  때마다 무작정  큰아이가  미운  생각이  들고 작은아이  편을  들게  된다고  하였다. 문제는  큰아이가  심심해  못견디는  나머지 동생에게  놀아달라고  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무작정  큰아이가  밉고  둘째의  편만을  들지  않을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심심해  못  견디는  것이  중생이다. 공부란  원천적으로 심심함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원보님이 책 읽고  나서  체험기를  쓰려고  하면 머리가  텅비어져  한  글자도  쓸  것이  없어   못쓰게  된다고  한다. 최종적인  생각을  감각하지  않고 그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생각에  끌렸기  때문이다.  한 글자도  쓸  것이  없다는  그  생각을  감각하면 그  한  생각마저  사라져  텅빔을  보존하고  유지하게  되어 하늘소리가  들리고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면  글은  무진장  나오기  마련이다. 2009.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