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49. 쭉정이 인생을 살  것인가, 알찬  인생을  살  것인가? 육체본위로  「잘  살아보세」 라고  할  때와 정신본위로  「잘  살아보세」 라고  할  때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선천에는  (先天) 물질을  개벽하라는  (開闢) 하늘의  구도에  (構圖) 따라 먹고  살기가  풍족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맞다고  할  것인  바 개인의  목표  또한  외부적으로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 입니다. 물질이  개벽되어  정신을  개벽하려는 후천에서  (後天)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육체본위가  아니고 정신본위인지라 외부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내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한다고  (追求) 하지만 외부에  있는 물질을  차지하고  내것이라고  여기는  차원과 외부에  있는  물질을 내적으로  물질을  포용하고  (包容) 만족하고  (滿足) 향유하는  (享有) 차원에는 질적으로  현격한  (懸隔) 차이가  있다고  할  것 입니다. 전자의  소유개념이란 (所有槪念)    저  산과  들이  나의  것이라는 하나의  관념에 (觀念)  지나지  않으므로 실존적으로 (實存的)  뿌듯한  소유감이  (所有感) 없는지라 마치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  신세와  같고 쭈그렁  밤송이와  같아서 포만감을  (飽滿感) 맛볼  수  없어 자기 (自己)  자신과  (自身)  소유물과는  (所有物)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분리된  존재에  지나지  않아 마치  「쭈그렁  밤송이  신세」에 지나지  않아 늘  허전하고  공허하기는  (空虛) 물질을  소유하기  이전이나  소유한  이후나  마찬가지로 진정한  부자장자가  아니고  거지신세를  면치  못하고 끝없이  일어나는  욕심에  시달리며  욕구불만 (欲求不滿)  속에  살  수밖에  없는  미숙한  (未熟) 인간인  것 입니다. 이에  비해 정신본위로  잘  살아본다는  말은 무한하게  텅빈  정신의  보따리에  가득찬  명암일색인  (明暗一色) 영적인  (靈的)  빛(色)과 천지만물 (天地萬物) 우주만유인  (宇宙萬有) 진정한  재물을  (財物) 포용하여 산야나  (山野) 강과  바다  산촌이나  도시의  풍경이나 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들의  빛과  모양과  색깔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마다  처음처럼  감상하고  즐길  때 비로소  소유감이  있고  만족감이  있어  공허감이나  허무감에  시달리지  않아  뿌듯한  충만감과  자족감이  있을  때 속이  꽉찬  알곡이요  만물의  영장  다운  진정한  부자장자라고  할  것이고 제대로  살  줄  아는  성숙한  (成熟)   인간이라고  할  것 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쭉정이  인생을  살  것인가? 알찬  인생을  살  것인가?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